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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명나는 정구장!!

  • 다시 한 번 KOREA!!

소프트테니스 역사 ㅣ 확대기

소프트테니스(정구)의 확대기 1920년 – 19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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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이후로 본격적으로 소프트테니스(정구)대회가 번성하게 된 이유는 개화의 욕구가 충만하였던 것이 스포츠에 표현이 되었던 것이다.
학교 제도의 확립으로 교사의 지도를 통한 보급이 중추가 되어 신문화의 일종으로 스포츠는 청년층에 환영을 받으며 전국 각지에 상당수 설립되었던 소ㆍ중학교나 전문학교가 모두 정구를 채택하였다.
또한, 1921년 10월 15일부터 17일까지 3일동안 동아일보 후원으로 반일적인 도시로 이름난 개성의 진성고진 코트장에서 우리 민족의 손으로 이룬 첫 대회인 전국여자정구대회(현재는 동아일보기)는 당시 경성 인구가 25만명 중 2만명이 관전하는 대성황의 경기를 치루며 소프트테니스(정구)가 전국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